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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뉴욕은 어디에나 있다. 크라카우어의 『역사』를 펴니 서문을 뉴욕 컬럼비아대학의 폴 크리스텔러 교수가 썼고, 한밤중 침대에서 하드윅의 『잠 못 드는 밤』을 펼치니 이 책은 뉴욕의 뒤틀린 기억과  초상화 그 자체였다. 편집하며 읽은 원고의 저자인 비비언 고닉·그레이스 조·윌리엄 헬름라이히는 모두 뉴욕의 아들딸이다. 스타일과 문화, 정신의 푯대가 되곤 하는 이 도시에 나는 올 9월 처음 가볼 계획이다. 하지만 여행은 두어 달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1년 전 갔던 에든버러는 견학을 목적으로 했고 일행과 함께 움직였기에 나는 도시의 바글바글한 풍경만 보고 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여행에서 나는 한순간도 은둔자인 적이 없었다. 들뜸과 피상성이 지배한 시간이었다. 그 기억을 덧씌우려고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 계획을 세웠고, 올여름의 읽기·말하기·상상은 모두 뉴욕에 관한 것으로 채워졌다.   여행의 큰 재미는 ‘준비’에서 시작된다. 기초체력 다지기인 셈인데 이번엔 『사람들의 고향으로 가는 짧은 여행』『전사자 숭배』『잠 못 드는 밤』『역사』 『저스트 키즈』가 근력을 만들어줬다. 가장 관심 가는 것은 뉴욕의 사회 풍경이다. 최근 몇 달 새 가장 많이 들은 뉴스 중 하나는 바다 건너 탈출하다가 익사한 이민자들 소식이었는데, ‘다름’을 겁내지 않는 도시 뉴욕에서 맨 처음 걸으려는 곳도 20세기 초 동유럽·아일랜드· 이탈리아 출신의 저소득 이민자들이 살았던 동네다.   “이미 말하고, 읽고, 듣고, 꿈꿨던 것과 유사하게” 혹은 “책에서 표현하는 글과 정반대거나 아주 유사한 빛나는 삶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랑시에르는 말한다. 나는 그 도시에서 이웃집에 초대받을 만하지 않거나 진지한 사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무리에서 겉도는 이들도 만나게 될까. 그 어떤 사회적 풍경이 펼쳐지든 그건 지금 나무나 풀보다 더 내 관심을 끌어당긴다.   그다음에 갈 국립 9·11 추모관은 어떤 기분을 불러일으킬까. 몇 년 전 제주 4·3평화기념관에 갔을 때 비통한 심정이 흘러 그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었지만 여행자로서 곧 그런 기분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어느 도시에나 떠도는 혼백과 출렁이는 만가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필연적으로 마주칠 텐데, 이때 조지 모스의 『전사자 숭배』는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의 귀한 가이드라인이 돼줄 것이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 묘지 참배인들을 ‘전장 순례’하는 이와 ‘전장 관광’하는 이로 대조시키며, 후자가 비판의 대상이 됐던 역사를 짚는다.   영국에서는 전사자 기리는 방법을 두고 폭넓은 논쟁이 있었는데, 핵심 사안은 비탄에 잠겨 추모만 해야 하는가, 아니면 도서관과 정원을 함께 조성해 산책하듯 묘지를 돌아볼 수 있는가였다. 실상을 파악해보니 사람들은 묘지에서조차 즐거움을 누리길 원했다. 그렇다면 뉴욕의 9·11 추모관에서 희생자들을 추념하는 것과 그곳의 공원을 거니는 여유 사이에서 내 감정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수년 전 도쿄를 여행할 때 신주쿠역 길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노숙인을 봤고 그 이미지는 여태 선명하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 속 아일랜드인 처녀 펠리시아는 미래(남자)를 찾아 런던으로 가지만 긴 여정 끝에 종이가방 하나에 살림을 챙겨 다니는 노숙인이 된다. 나의 아일랜드인 친구 루크는 서울의 길거리를 보며 “노숙인은 다 어디 갔어? 동냥하는 사람들은?” 하고 묻는다.   작가 하드윅은 미국 남부 켄터키 태생이지만 뉴욕을 흠모해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소설 속 뉴욕은 빛의 도시여야 할 텐데, 정반대로 녹슬고 사방에 덫이 놓인 데다,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호텔에 득시글대는 등 불운이 덧칠된 도시다. 냄새나고 소란스럽고 마약에 찌든 이 장소는 저자의 시적 문체에 힘입어 더 선명하게 잔인해지고, 공기는 더 역해진다.   하지만 그런 작가 수천수만 명이 사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와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이가 들끓는 침대에서 잤지만 그곳을 사랑해 절대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뉴욕은 예술로 뒤덮인 도시가 됐고, 나 역시 많은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낼 것 같다.   끝으로 여행에서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기다. 지금 나는 전기(前記)를 쓰고 있지만, 여행 후 다시 내 언어와 이미지로 가다듬어 단단한 글로 구축하고 싶다. 여행을 기억에 새기는 방식 중 하나는 글쓰기의 우회로를 통해서다. 그것은 사후적으로 여행자의 목소리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이따금 그것들은 권위를 갖고 오랜 세월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고착화된 이미지는 다음번 여행자가 균열을 내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여행 예술가 여행 계획 도시 뉴욕 이번 여행

2023-09-04

[기자의 눈] 화려한 ‘천사 도시’의 이면

미국에는 ‘애시캔파(Ashcan School)’라는 화파가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집단이다. 1912년 조지 벨로스의 ‘부두의 남자들’이 대표적 작품이다. 그림만 봐도 코끝이 찡해지는 추위가 느껴지는 이 작품 속에는 외투를 걸쳐입은 남자들이 부둣가에서 서성인다.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서 있는 이들은 일감을 기다리는 일일 노동자들이다. 정박한 배에 말과 화물을 싣고 내리는 일을 하는데, 적은 임금일지라도 그마저 일감을 얻기 위해 갈구한다. 그런데 강 건너로는 화려한 고층 빌딩들이 자태를 뽐내듯 서 있다.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돈을 모아도 결코 탐낼 수 없는 집들. 차가운 강물은 부유층과 도시 빈민을 그렇게 갈라놓는 역할을 한다. 벨로스의 작품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화려한 도시 뉴욕의 이면을 보여준다.   미국의 대표적인 화려한 도시엔 LA도 빼놓을 수 없다. ‘천사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뉴욕과 별다를 바 없다. 도로 양옆으로 텐트가 끝없이 줄지어 있고, 길바닥 털썩 주저앉아있거나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텐트촌 주변에는 쥐들이 나올 정도로 위생 상태도 심각하다. 빽빽이 들어선 화려한 고층 빌딩들과는 상반된 모습, 바로 LA시내 한복판에 있는 ‘노숙자 텐트촌’의 현실이다.   LA 신임 시장 캐런 배스가 업무 첫날 ‘노숙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지만, LA의 노숙자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홈리스 지원단체 와인가트 재단의 미구엘 산타나 최고경영자는 “노숙자는 이제 화창한 햇살과 교통체증처럼 LA의 명물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할 정도다. 노숙자가 되는 이유에 대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노숙자를 돕는 단체들은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재정적으로 불안정할 경우 한 달만 수입이 없어도 노숙자가 될 수 있다.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 상승으로 한순간에 노숙자로 전락한 예일대 졸업생도 있다고 한다.  LA다운타운 스키드로에서 만난 한 노숙자는 “LA의 한 회사에 채용돼 다른 주에서 왔는데, 갑자기 회사 재정이 어려워져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됐고 그때부터 노숙 생활을 한 게 27년째”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입자의 약 25%가 자신의 소득 절반 이상을 임대료로 지불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렇게 월세를 내고 나면 각종 공과금이나 페이먼트 납부에 급급하다 보니 저축이나 투자는 생각지도 못하게 되고, 그렇게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부족한 의료보험, 실업률 증가 등이 빈곤의 원인이 될 수 있고, 가정 폭력이나 정신 질환, 마약 등 개인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LA다운타운 거리에서 마약 성분의 펜타닐로 인해 사망한 노숙자 수가 연간 7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사망한 노숙자 2000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규모다. 스키드로우 노숙자들은 펜타닐, 헤로인 등 마약류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취재 도중 인터뷰에 응한 노숙자들 역시 마약은 다 경험해봤다고 했다. 다만 약에 쉽게 중독되기 때문에 손 쓸 틈도 없이 정신 질환자가 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배스 신임 시장은 앞으로 1년 이내 노숙자 약 1만7000여 명에게 주거지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해선 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집값과 임대료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배스 시장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노숙자들을 위해 집만 지어야 할 것이다. 서민이 거주하지 못하는 도시, 중산층이 몰락하는 도시는 무늬만 도시일 뿐이다. 홍희정 / JTBC특파원기자의 눈 천사 도시 노숙자 텐트촌 노숙자 문제 도시 뉴욕

20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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